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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코로나로 나의 삶은 지진을 만난 듯 흔들렸다. 코로나 전까지 나는 라스베가스 살았었고, 코로나 이후 라스베가스를 떠나 지금은 삶의 터전이 없는 외국인으로 한국에 있다. 시간이 나를 이곳저곳으로 옮겨 놓는 것을 두고 시간여행이라 해도 좋을까. 1987년 프리다 칼로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고, 2019년 멕시코 시티를 여행하면서 프리다 칼로를 다시 만났다. 이 여행기를  쓰는 나는 2023년 한국의 어느 도서관에서 프리다 칼로와 또 재회했다. 아니면 이런 것이 시간 여행인가. 

2019년 4월 3박5일 멕시코 시티 여행을 떠났다. 라스베가스에서 멕시코 시티까지는 비행기로 3시간 거리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여행이지만 라스베가스에 온갖 즐거움이 많았던지라 멕시코 여행을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다.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날이 금요일 밤이였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왔다. 저녁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숙소 근처가 떠들썩했다. 불금의 멕시코시티. 흥겨운 음악소리와 젊은이들로 길은 혼잡을 이루었다. 그 와중에 까치담배를 팔고 있는 상인들. 멕시코시티의 불금은 세탁된 옛 기억을 꺼내보게 만든다. 팔을 끄는 호객행위에 탈선하는 십 대가 되고 말았다. "으하하 나보고 들어 오래... 으하하"  젊은 시절이 생각나서일까... 50 훌쩍 넘은 나이를 숨길 수 있었서 일까... 멕시코시티의 밤 길에서 불금을 즐기며 즐거웠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대중교통, 전철과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멕시코의 고대도시 테오티우아칸을 방문했다. 입장료를 내고 테오티우아칸에 들어서면 많이 걸어야 한다. 유적지가 넓어서인지 입구가 여러 곳에 있다. 달의 신전 Pyramid of the Moon과 해의 신전 Pyramid of the Sun이 가까운 입구를 선택하면 덜 걷게 된다. 이 두개의 피라미드 신전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구경하면 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제되어 멕시코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유적지라 한다.

피라미드의 계단은 높아 올라가기 매우 힘들다. 엉금엉금 기어서 올랐다.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수수께끼의 피라미드 높은 곳에 서면 광대한 고대도시 테오티우아칸이 한 눈에 들어온다.  

테오티우아칸 출구를 걸어나오면서 박물관을 만났다. 무료라 하여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몰랐던 사실이 있다. 이 박물관의 많은 유물들은 프리다 칼로와 그녀의 남편 디에고가 멕시코를 사랑하는 순수한 애국심으로 자신들의 예술작품을 팔아 유물을 구입 보관했던 소장품들이 많다고 한다. 프리타 칼로의 일기장이 발견되면서 책이 발간되었고... 그녀의 일기장에 적힌 내용이다.

테오티우아칸을 갔다면 동굴식당 La Gruta을 가봐야 한다. 박물관을 구경하고 계속 같은 길을 걷다보면 동굴식당으로 가게 된다. 자연 동굴 식당이라 체험해 볼만하다. 동굴의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알록달록한 의자 색깔이 멕시코다워 좋았다. 멕시코 음식에는 평소에도 별 기대가 없어, 기본적인 메뉴를 시켰다. 앉아서 식사를 하는데 한국인 단체여행객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내심 반가웠다.

또르티아 칩 Tortia chip 과 각종 살사 Salsa
멕시칸 rice, black beans, steak.
Fajitas de Pollo 치킨 파이타

동굴식당에서 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소깔로 광장으로 갔다. 멕시코의 심장이라 불리는 소깔로 광장에는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멕시코시티가 세계 인국 10위의 도시라 했던가. 소깔로 광장의 대형 멕시코 국기에서 레르포마 천사의 탑, 독립기념비까지, 이 날 3만 보는 족히 걸었을 것이다.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 큰 길에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차량 없는 도로를 활보하고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볼까 하고 나왔다가 차량 없는 도로를 걸어서 차풀테펙 공원까지 가버렸다. 길을 걸으면서 세어 보지는 못했지만, 멕시코시티에 이렇게 많은 박물관이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래전 지진으로 인해 부서진 건축들과 찌그러진 도로 위를 걸으면서 아직도 보수가 안되었나 한탄했었는데. 오늘 아침 멕시코시티의 거리는 부티 나고 매력적이다. 그리고 이곳에 멕시코의 자부심, 년간 방문객이 2백만 명이 넘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 국립 인류학 박물관이 있었다.

인류학 박물관은 넓고, 볼 것이 많다. 특히 해골을 많이 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인신공양을 하였을까...짐작해 보았다.

인류학 박물관 입구 폭포수가 멋찌다

인류학 박물관을 처음에는 꼼꼼히 보다가, 나중에는 썰렁썽렁 보다 보니 아직 이런 시간임에도 박물관을 나와 버렸다. 계획에 없었던 프리다 칼로를 그렇게 다시 만났다. 택시를 타고 프리다 칼로의 생가 Casa Azul 파란 집으로 갔다. 입장을 하려면 줄을 서야 했다. 거의 2시간 줄을 섰다. 그리고 입장료도 냈다. 인류학 박물관은 세계 제일이지만 줄 안 서고 들어갔고, 프리다 칼로의 집 입장료도 인류학 박물관보다 4배가 비싸다. 그래도 좋았다.

발이 왜 필요하지? 내게는 날개가 있는데.

전시품도 전시장도 인류학 박물관에 비해 현저히 없다. 1987년 미국 아리조나대학에서 여성학 강의에서 프리다 칼로를 배웠다. 영어도 딸렸고 공부보다 알바를 더 많이 해야 했던 학창 시절이라 예습도 복습도 없이 프리다 칼로를 배웠었다. 대충 그녀의 독특한 눈썹과 고통을 기억했고 어딘가 주술적인 그림은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크게 다쳐 본적이 없어 육체가 주는 고통은 모른다. 나는 혼자 오랫동안 경제적인 것을 해결해야 했기에 노동의 고통은 잘 알고 있다. 육체가 주는 극한의 고통이 그녀의 예술이 되었다면, 아마도 나는 프리다 칼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 나 역시 노동의 고통을 이겨내다 보니 노동이 즐거움이 되었고 일중독자라 행복했으니 말이다. 

다음 날은 전철과 버스를 타고 소치밀코로 갔다. 지도에서 보니 멕시코시티에서 적당히 갈 수 있는 거리라 소치밀코를 선택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조금 걸어서 이 물길이 있는 곳을 찾아와야 한다. 인터넷에 설명한 만큼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배 타고 물길을 한 바퀴 돌면서 즐기면 된다. 

나는 맥시코시티 여행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다. 최근에 번역으로 발간된 프리다 칼로의 일기장을 읽고, 프리다 칼로가 소치밀코의 수로를 배를 타며 즐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치밀코에 있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라...당시에 그녀가 탄 배와 내가 탄 배가 서로 비켜갔었구나 생각한다. 프리다 칼로의 남편은 그녀의 여동생과 불륜을 저절로 그녀를 또 다른 고통에 살게 했다. 그런데 얼마나 사랑하면 배신의 아픔을 넘어설 수 있을까. 프리다 칼로는 남편 디에고와 이혼 후 다시 재결합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 고통은 또 아름답다고 표현되기도 한다. 왜? 그저 주어진 삶을 사는 인간의 모습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지하철 정류장 표시가 그림으로 되어 있다.
멕시코시티의 대중교통을 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