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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여행 세 번째 날 아침, 야간 버스 안에서 눈을 떴다. 어제저녁 10시 와카치나에서 야간 버스를 탔었고 버스는 밤 길을 달려서 아레키파에 왔다. 밤새도록 도깨비와 놀다 지친듯한 몸과 마음을 화장실에 가서 잘 씻고 옷도 갈아입었다. 그다음, 식사도 하고 은행이 있다면 환전도 할 겸 시내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갔다. 버스에서 내려 대형 마트를 찾았다. 다행히 한국의 롯태 백화점 반찬, 음식 코너와 비슷한 매장이 있어 간편한 아침 식사를 저렴하게 할 수 있었다. 은행도 찾아가 환전을 했다. 행선지 없이 무조건 버스를 탔으니 어디를 갔었는지 지금도 잘 모른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택시를 탔다. 내가 서툰 배낭여행자인 반면에 택시 운전수는 배낭 여행자가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택시 운전수가 내려 준 곳에서 골목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야 했지만 페루 사람들이 친절하면서도 센스가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야나후아나 공원에서 바라 본 미스티 화산

아레키파는 페루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고 흰색 건물이 많아 백색의 도시로도 불린다. 그리고 아레키파에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으로 유명한 콜카케년 Colca Canyon이 있다. 콜카케년을 갈까도 했지만 11박 일정에 넣기엔 무리였다. 우여곡절 끝에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 주변을 돌아보면서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여행사에서 당일 시티투어를 예약했다. 

Historic center of Arequipa / Plaza de Armas 아르마스 광장
어린 라마와 함께. 사진 값을 자의로 지불해야 한다.
이층 투어 버스에서 본 아레키파 거리

배낭을 여행사에 맡겨 두고 시티 투어를 시작했다. 야나후아라 공원 Plaza de Yanahuara, Miste 미스티와 Chachani 화산 전망대, 잉카파카 아울렛과 미니 동물원, 등을 다녔다. 

Plaza de Yanahuara에 있는 산 후앙 San Juan 교회
높이 6074미터의 차차니 화산과 높이 5822미터의 미스티 화산
마지막 한시간 시들해진 투어는 승마 체험으로 끝이났다.

아레키파는 푸노로 가기위한 경유지였다. 무박에 이번엔 푸노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타야 한다. 야간 버스 경험을 말하자면, 눈은 감고 있지만 내 정신을 깨어서 흔들리는 버스의 길잡이를 자청하 듯 모든 소음에 반응했다. 버스는 밤새도록 서고 가기를 반복했었다. 어둠에 가려 길의 상태는 보이지 않았지만 절벽도 지났을 것이고 좁은 길, 비포장 도로를 무단히 지났던 것 같다. 버스는 밤새 울렁울렁 대며 달렸었다. 아레키파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야간 버스를 타기 전, 멋진 만찬을 즐겼다. 힘들다 추억하기보다는 멋졌다는 생각을 다지기 위해서다. 잘 빗은 흰 머릿결과 수북이 자란 흰 수염의 노년의 웨이트가 거칠어 보니는 뼈마디 굵은 손으로 유리문을 잡고 친절하게 나의 방문을 환영하는 그 몸 짓하나로 충분했다. 아레키파 백색의 도시는 순수했다.

Ulos 섬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가이드

페루 여행 4일째. 또 버스에서 눈을 떴다. 내린 곳은 푸노. 이틀 연이어 야간 버스를 탔다. 푸노에서 쿠스쿠까지 한번 더 야간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 터미널 화장실에서 씻고 옷갈아 입고, 유료 화장실이라 오히려 당당하게 할 수 있어 좋았다. 버스 터미널에 있는 여행사 중 점심이 포함된 우로스 Ulos 종일 투어가 있어 예약했다. 터미널 내 인터넷이 잘 터지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투어 시간을 기다리면 된다. 페루 여행에서 유심칩은 구입하지 않았다.

Ulos 에 살고 있는 주민들, 환영의 뜻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수줍은 젊은 여성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

푸노에는 Titicaca 호수가 있다. 해발 3,810미터의 고산 지대에 위치해 있고 경험해 보니 바다인지 호수인지 대단히 넓다. 이 호수에는 토토라 Totora라 불리는 갈대가 자생하고 있는데 이 갈대를 엮어서 만든 섬들이 40여개 군락을 이루고 있고 가족단위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섬들을 우로스 Ulos라 한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Ulos로 가서 구경하고, 기념품도 사고, 식사도 할 수 있다.

기념품을 팔고 있다.

우로스 구경이 끝나면 배를 타고 25키로 떨어진 타낄레 Taquile 섬으로 향한다. 배는 티티카카 호수 위를 거의 2시간반쯤 달린 것 같다. 섬에 도착하면 가벼운 트랙킹이 시작된다. 가정집에서 마련된 점심을 먹었다. 마당 피크닉 테이블에 10여 명의 여행객들이 옹기종기 앉아 점심을 기다렸다. 푸른 하늘과 푸른 호수가 내려다보며 긴 시간 점심을 기다리는 것에 불만하는 사람이 없었다. 점심 메뉴로 생선 구이가 나왔는데 그냥저냥 먹을 만했다. 생선을 티티카카 호수에서 잡은 것일까? 물어보지 못했다.

이정표

타낄레 섬은 직물 공예로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곳이랍니다. 티티카카 호수를 바라보면서 트레킹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가끔 만나는 작은 여자아이들은 수줍은 미소로 키고리 같은 공예품을 내밀곤 했다. 왜 내 눈엔 모두 중국 제품처럼 보였을까. 직물 공예 무형문화재와 기념품과의 관계는 너무나 멀지 않나 싶다.

골목길 그늘에서 휴식하는 여자들
광장에서 굴렁쇠가 아닌 검은 타이어를 굴리며 노는 아이들.
구멍가게

타낄레 섬은 아름답다기보다 정겹다. 푸른 하늘과 잔잔하고 호수, 조용한 섬은 시절을 추억하기 좋은 장소인 듯하다. 어릴 적 잔돈푼 몇 개로 하루 수십 번 드나들던 그 시절 구멍가게를 떠올리게 한다. 골목길을 쪼르르 빠져나와 뽀빠이를 사 먹던 시절도 있었다. 이곳에 오니 빙긋빙긋 웃음이 난다. 골목길에 드리운 그늘까지도 정겹게 느껴진다. 여행은 이래서 아름답다.